3월부터 4월까지, 신나게 코딩했다. 정확히는 내 손으로 친 코드가 거의 없다. Claude가 손이었고, 설계는 내가 했다.
두 달 동안 loopy-me 구조를 다시 잡고, 회사 일로 밸류체인 1-pager를 열몇 개 만들고, 집에 작은 서버도 세웠다. 거의 매일 뭔가를 붙였다. 붙이는 맛이 있었다.
그러다 Loopy-me 아키텍처 다이어그램을 그리던 날, 박스가 30개를 넘어가는 걸 보고 멈췄다.
“복잡하면 문제”라는 직감이 올라왔는데, 그 직감이 맞았다.
왜 이렇게 됐는지 적어두고 싶었다.
복잡도는 두 종류였다
박스 30개를 찬찬히 뜯어보다가 알았다.
복잡도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.
하나는 유지해야 할 복잡도다. 시스템이 하는 일 자체가 그만큼인 거라 줄일 수 없다. 다른 하나는 제거해야 할 복잡도다. 옛 구조를 둔 채 새 구조를 얹어서 생긴 부산물이라, 정리만 끝나면 사라져야 한다.
내 다이어그램의 박스는 대부분 후자였다.
파일을 두 군데에 중복으로 둔 것, 연결 안 한 채 띄워둔 알림, 표기가 제멋대로인 것.
하나씩 보면 다 시간이 부족하니 다음에 고치자며, “일단 이렇게 해두자”였던 것들이다.
큰 결정 같지도 않아서 기억도 잘 안 났다. 그런 게 서른 개 가까이 쌓여 있었다.
AI는 땜질을 너무 싸게 만든다
여기서 솔직할 부분이 있다. 이 임시방편들은 내가 게을러서 쌓인 게 아니라, 너무 쉬워서 쌓였다.
문제가 생기면 AI한테 물어본다. 바로 우회로가 나오고, 붙이면 문제가 사라진다.
그 자리에선 진도가 나간 것처럼 느껴진다. 근데 우회로는 구조를 고친 게 아니라, 구조 위에 한 겹 더 덮은 거다.
다음에 비슷한 문제가 오면 그 위에 또 한 겹 덮는다.
직접 한 줄씩 짜던 시절엔 땜질에도 비용이 들었다. 손이 아프니까, 붙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.
“이거 이렇게 막는 게 맞나” 하고. 지금은 그 비용이 거의 0이다. 그러다 보니 망설이게 만들던 마찰도 같이 사라졌다. 박스 30개는 그 0원짜리 땜질이 조용히 쌓인 결과였다.
문제를 푼 게 아니라 미룬 거다. 땜질은 부채로 남는다.
그래서 남는 건 아키텍처다
정리는 두 단계였다.
먼저 임시로 얹어둔 박스, 어차피 사라질 박스를 다 지웠다. 그러니 30개가 13개로 줄었다. 그 13개를 다시 보니 UI / Engine / Data, 세 층으로 묶이더라. 본질은 처음부터 세 층이었고, 나머지 절반 넘게가 임시 박스였던 거다.
13개가 됐어도 한 번 더 물었다. “이 박스, 정말 필요한가?” 줄여도 여전히 복잡하면, 임시방편이 아니라 본질을 깎아야 할 차례다. 그 질문까지 통과한 게 세 층이었다.
이걸 푼 건 더 똑똑한 프롬프트가 아니라 손으로 그림을 그린 거였다.
화면 안 다이어그램 도구에 매달리면 공간 감각이 안 사는데, 종이에 그리니 한 번에 풀렸다.
생각해보면 이 두 달이 그랬다. 코드는 Claude가 다 쳤지만, 박스를 세 층으로 줄인 건 내가 한 일이었다.
AI는 박스를 빠르게 늘려준다. 줄여주진 않는다. 줄이는 건, 적어도 아직은, 사람 몫이다.
요즘 챙기는 기본기
거창한 방법론은 아니고, 이번에 데이고 나서 다시 챙기게 된 것들이다.
코드 짜기 전에, 종이에 손으로 먼저 써본다. 적어도 세 가지.
- 스펙·요구사항: 애초에 무엇을, 어떤 기능을 담은 걸 만들 건가.
- 구조도·아키텍처: 무엇으로 이루어지고, 어떻게 나뉘나.
- 데이터 모델: 어떤 데이터가 어떻게 연결되나.
다 써봤는데 머리에 안 들어오면, 그림 탓이 아니라 설계가 틀린 거다.
- 줄일 만큼 줄였는데도 복잡하면, 박스마다 묻는다. “이거 정말 필요한가.”
- AI가 준 우회로는 한 박자 멈추고 본다. 붙이는 비용이 0이라, 멈추는 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.
그래도 계속 붙여본다
이렇게 쓰면 땜질이 죄악처럼 들리는데, 꼭 그렇진 않다. 일단 굴러가게 만드는 힘도 필요하고, 안 그러면 시작도 못 한다. 구조는 머릿속 설계만으로 자라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.
반복해서 써보는 동안, 뭐가 임시방편이고 뭐가 본질인지 그제야 드러난다.
서른 개를 쌓아본 다음에야 열세 개가 보였다.
다만 가끔 멈춰서 박스를 세어봐야 한다. 30개가 넘어가면, 그건 신호다.
완성까지는 가볼 생각이다. 두 달은 시작이었다.
박스 13개짜리 그림은, 적어도 내 머리엔 들어온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