래오는 생수 페트병을 좋아한다. 따서 마시지는 않는다. 그냥 들고 다니며 본다.
태오는 같은 페트병을 받으면 바로 따서 마신다.
쌍둥이인데 같은 걸 줘도 반응이 다르다. 그게 요새 자꾸 눈에 들어온다.
병
래오한테 투명한 병 안의 물은 작은 우주 같나보다.
출렁이고, 굴절되고, 공기방울이 올라가고, 빛이 통과한다. 안 따고 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모양이다.
어쩌면 차가워서일 수도 있다.
래오는 시원한 감각을 좋아한다. 손에 쥔 병의 차가움. 그게 좋은 건지도 모른다.
태오는 다르다. 받으면 바로 “어떻게 쓰지”로 간다. 따고, 마시고, 끝.
같은 사물인데 한 명은 “이건 뭐지, 어떻게 생겼지”로 들어가고, 한 명은 “어떻게 쓰지”로 들어간다.
바다
낙산사에 갔다. 래오가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다고 해서 출발한 길이었다.
태오는 파도에 꺄르륵꺄르륵 웃었다. 몸으로 바로 들어갔다.
래오는 달랐다. 래오는 감각에 더 예민하다.
특히 처음 하는 일 앞에서 그렇다. 낯선 자극은 먼저 멈춰서 받아들인다.
바다도 그랬다. 한참 뒤에야, 바다가 하늘이랑 맞닿을 만큼 넓다고 알려줬다. 보고, 생각하고, 말로 옮겼다.
병에서 본 게 바다에서 똑같이 나왔다.
캔버스
얼마 전 래오가 첫 아크릴 캔버스 작품을 그렸다. 제목은 없다. 분홍색과 빨간색으로 두텁게 칠했다.

오래 보던 아이가 오래 칠했다.
비교하지 않기
그래서 래오한테는 재촉을 안 하려고 한다. “왜 안 해” “해봐”는 관찰하는 시간을 흐트러뜨린다.
새 환경에서 워밍업이 더 필요한 것도 소심함이 아니라 처리 방식이다.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시간이 밖에서 보면 정지처럼 보일 뿐이다.
제일 어려운 건 비교하지 않기다.
래오는 래오고 태오는 태오다.
쌍둥이 부모가 평생 붙들고 있어야 하는 문장 같다.
얼마 전 100일 사진을 다시 꺼내봤다. 애기애기하던 게 어디 가고 어린이가 됐다.
같은 자극도 한 명은 사물을 보고, 한 명은 쓴다. 둘 다 정상이고, 둘 다 자기 결대로 자라고 있다.